드러커의 예견: 지식기반경제와 생산성의 본질
일찍이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지식근로자가 주도하는 지식기반경제의 도래를 예견하며, ‘자율성’이 지식근로자의 생산성을 높이는 전제 조건이자 혁신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가 될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1998년 앤더슨 컨설팅(현 액센추어)과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공동 발표한 연구보고서 <지식근로자의 등장: 아시아의 새로운 과제>에서도 ‘지식근로자의 생산성이 혁신 역량 확보의 관건’임을 단언하며,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통해 혁신을 촉진하는 환경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이제는 이러한 주장을 담은 보고서와 논문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자율성은 경영의 상식이 되었습니다.
도대체 드러커는 어떻게 수십 년 전에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도전을 이토록 정확히 예측할 수 있었을까요? 정보화와 글로벌화가 가속화되는 지식기반경제 체제에서는 지식과 기술의 생명 주기가 급격히 단축되고 고객의 수요는 더욱 개인화됩니다. 경쟁이 심화할수록 혁신은 기업 생존의 필수 과제가 되며, 결국 혁신의 원동력인 ‘지식근로자의 생산성’이 기업 경쟁력을 판단하는 절대적 잣대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이미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생산성을 결정짓는 중심에 바로 ‘자율성’이 있다는 점을 정확히 짚어냈습니다.
공헌하는 집단으로서의 조직과 자율성의 가치
드러커는 조직을 단순한 권한 행사의 장이 아니라, 공통의 목표를 향해 ‘공헌’하는 집단으로 정의했습니다. 조직의 목적을 단순한 목표 달성을 넘어 ‘공헌’의 관점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건강한 조직이라면 구성원의 에너지를 해방하고 이를 유연하게 활용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지식근로자의 자율성에 대한 드러커의 신념은 매우 확고했습니다.
“타인에게 과업을 위임했을 때 그가 비효율적으로 수행한다면, 비윤리적이거나 비합법적인 요청이 아닌 한 자기 방식대로 배우도록 내버려 두라. 물론 여기에는 위험이 따르므로 지식근로자의 자율적 행동을 면밀히 모니터링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경로를 스스로 규정하도록 허용해야 한다면, 그 정도의 위험은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
‘경영은 사람에 관한 것(Management is about human beings)’이라는 철학 아래, 모든 조직의 진정한 자산은 ‘인간’뿐이라는 관점을 유지해 온 드러커는 종업원을 단순한 자원이 아닌 인격과 시민정신을 갖춘 존재로 보았습니다. 또한 그들이 자신의 업무량과 질을 스스로 통제할 능력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애석하게도 1954년 저서 <경영의 실제>에서 제안된 ‘목표관리(MBO)’가 오늘날 하향식 지시 수단으로 오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소제목인 ‘목표관리와 자기 통제(MBO and Self-control)’에서 암시하듯, MBO의 본질은 근로자가 조직의 목표와 자신의 과업 간 연결성을 깊이 고민하고, 상급자와의 수평적 토론을 통해 스스로 목표를 결정하는 ‘자율성’에 있습니다.
자율성이 창출하는 전략적 이점과 혁신의 동력
자율성의 부여는 강력한 자발적 동기부여를 유발합니다. 이는 구성원이 적당한 수준에 안주하지 않고 도전적인 목표를 설정하게 할 뿐 아니라, 상사의 성공을 적극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상사가 보다 미래지향적이고 전략적인 업무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합니다. 유한킴벌리의 문국현 전 대표는 간부 시절 ‘자기관리에 의한 목표관리’의 진정한 의미를 실천하며, 최고경영진과 이사회의 전략적 어젠다를 선제적으로 수행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자율적 공헌이 탁월한 성과를 거두고 경영자로 성장하는 동력이 되었다고 회고합니다.
많은 연구에 따르면 혁신가의 약 75%가 이전 직장이나 직무에서 낮은 자율성으로 인해 좌절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혁신에서 자율성이 중요한 이유는, 혁신이 조직 차원의 공식적인 전략보다 현장의 ‘게릴라전’ 같은 전술적 접근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IBM이 위기 상황에서 e-비즈니스라는 신시장을 개척할 수 있었던 것도 데이브 그로스만(Dave Grossman)이라는 프로그래머의 자발적인 노력 덕분이었습니다. 그가 초기 아이디어를 제시했을 때 관리자의 무관심으로 좌절을 겪었음에도 끝내 혁신을 이뤄낸 사례는 자율적 탐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줍니다.
자율과 책임의 균형
사내 벤처처럼 성취 욕구가 높은 인재들이 모인 조직이나 높은 창의성이 요구되는 프로젝트일수록 더 높은 수준의 자율성이 필요합니다. 성취 지향적인 인재는 대개 성과 창출의 전 과정에서 자기 통제를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율성이 무한정 주어질 때 구성원들이 개인적 삶과 업무 사이의 균형을 잃거나 조직 전체의 방향성에서 이탈할 위험도 존재합니다. 조직에는 반드시 준수해야 할 규범이 있으며, 공동의 목표를 위해 집중해야 할 시기가 항상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지식근로자에게 주어지는 자율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자율과 책임의 조화야말로 지식기반경제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가능케 하는 진정한 경영의 묘미일 것입니다.